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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질문하는 신앙인2020-02-04 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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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하느님은 왜 억울하게 고통당하고

죄 없이 죽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계시나요?”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한 청년이 삶을 비관하여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였는데, 하필이면 야근을 마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던 공무원 위로 떨어져 두 명 다 사망한 사건입니다.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현실과 성실한 삶을 살던 평범한 가장의 어이없는 죽음에 많은 사람이 안타까워했지요.

이 기사에 네티즌들이 댓글로 저마다의 생각을 표현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이것이었습니다. 신은 없다.”

이 짤막한 댓글은 우리에게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줍니다. 이 말에 동의한 이들은 분명 이렇게 생각했겠지요. 신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그 젊은이가 불의한 사회 구조로 인해 삶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도록 놔두고, 단란한 한 가정의 가장이던 무고한 공무원이 이런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신앙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듯 보이는 이러한 물음은 바단 어제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 안팎에서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이는 본래 무신론자들이 신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를 비판하는 데 사용했던 대표적인 공격 논거로, 그 토대에는 다음의 두 가지 문제제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면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을 텐데, 어찌 이런 불의와 고통을 미리 막지 않는가?’ 그리고 하느님이 지극히 선하다면 당신이 사랑하는 인간이 고통에 신음하는 것을 그냥 놔두지는 않을 텐데, 어찌 방관하는가?’ 특히 예기치 않은 자연재해나 사고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상황에 직면할 때, 신앙인들조차도 이런 비탄 어린 의문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도대체 하느님은 왜 침묵하시는 걸까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인 물음에 답을 주기 위해 교회의 신학자들이 고민하고 시도했던 다양한 논의를 전통적으로 신정론神正論혹은 신의론神義論이라고 합니다. 신정론의 중심 문제는 인간이 믿고 고백하는 신의 존재와 우리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부당한 고통의 모순적인 공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오래되고도 전통적인 교회의 대답은 인간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즉 무한하신 하느님의 계획과 신비를 유한한 인간이 온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것이 자명해질 테니 주어진 현실에 충살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라나 이성적인 논의를 피하고자 하는 이러한 논거가 애초에 의혹을 제기했던 무신론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기 힘든 고통과 악의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우선 우리는 두 가지 종류의 악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자연재해와 같이 인간의 행위와 관계없이 자연법칙에 의해 일어나는 물리적인 악과 인간의 의식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도덕적인 악의 구분입니다. 이들 중 도덕적인 악에 대해서는 소의 자유의지 논거로 답할 수 있지요. 즉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향한 결과로서 발생한 고통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인간 자신이 져야 하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이에 따른 재난에 대해서는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인류가 책임의식을 갖고 개선해야 하는 것이지요.

 

왜 하느님은 이 세상이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도록 놔주시는가?’

 

그러나 자연적인 악과 관련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자연재해에 나와 내 가족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다음의 질문과 같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이 세상이 자연법칙에 의해 움직이도록 놔두시는가?’ 그러면 만약 하느님이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그때그때 개입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원인과 결과를 잇는 끈이 끊어진다면 우리는 과학이나 문화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고, 좋은 결과를 예상하며 하는 선행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의 인과법칙이 무너지는 곳에서는 윤리적 행위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또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 왜 하느님이 애초에 곳곳에 위험요소가 있는 불완전한 세상을 만들었는가?’ 신학적으로 인간을 창조의 협력자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협력으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마련하셨다는 것이지요. 푸른 풀밭에서 하릴없이 풀을 뜯는 양보다 양들이 안전하게 풀을 뜯을 수 있도록 울타리도 쳐주고 물도 대주는 주인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임은 모두가 동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정론과 관련된 이러한 논거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후세계와 부활에 대한 희망입니다. 만약 우리 존재가 현 세상의 죽음으로 끝난다면, 부당한 고통은 그야말로 쓸모없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죽음을 끝이 아닌 이 세상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면, 세상에서 겪는 고통과 악은 이 기나긴 과정을 계속해서 밟아가는 각 개인의 인격적 완성의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악은 마땅히 심판하고 단죄해야 할 것이고,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직면해서는 종말론적인 희망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욥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여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하느님을 뵙고 나서는 모든 것을 깨닫고 수용할 수 있었듯이, 그날이 오면 굳이 해명하려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명해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는 고통은 없습니다.

 

 

박찬호 신부의 질문하는 신앙인

박찬호 ; 수원교구 소속 사제. 수원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옮긴이 ; 정진화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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